[작성자:] 젠더교육플랫폼효재

  • “90년대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가?”

    “90년대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가?”

    “90년대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가?”

     

    11월 9일 여성운동의 계보잇기 사업으로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이하 ‘동창회’)가 진행되었어요. 90년대 페미니스트 동창회는 다양한 인물들의 생애사를 통해 여성운동의 계보를 이어가며 세대 간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작년 9월, 신촌을 무대로 활동했던 영페미니스트들의 동창회에 이어 올해는 90년대 서울지역 대학 내 여학생들의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보았습니다.
    90년대 활약한 페미니스트 개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되어가고 있는가”를 같이 나누어보며 여성운동의 한 흐름을 공유하고자 했어요.
    (작년 동창회 후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후기링크

    먼저 현재 경희대 교수로 재직중이고 활동가 출신 교수이신 ‘91학번 엄혜진 님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어요.

    <“저는 따까리도 했지만 짱도 제가 먹었다는 거예요” >

    “91학번부터 94~95학번까지는 이른바 구좌파 운동,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몰락한 이후에 어떤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모색해야 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87년 이후에 확장된 민주화 운동의 공간과 시너지가 대학 사회에서 엄청나게 대중운동으로 활성화돼요. 그 당시 대학 사회를 운동권들이 정치적 헤게모니뿐만 아니라 윤리적 헤게모니도 장악했던 시기인 거죠”

    “나는 되게 헤게모니 집단,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헤게모니 집단이고 나는 리더이고 이런 가운데 대학을 졸업했다는 겁니다. (중략) 제가 말단으로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예뻐했어요. 예뻐했는데 정말 ‘예뻐’만 한 거야. 뭐냐 하면 어떤 중요한 의제에 대해서 뭔가 맡기고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것을 내가 아니라 나랑 같은 동기의 다른 남자 활동가들한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이게 나로서는 낯선 경험입니다. 내가 낯설다고 경험한 건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기 때문이에요. 내가 대학을 나오면서 대자보도 내가 붙였지만 연설도 제가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따까리도 했지만 짱도 제가 먹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를 나갔더니 나한테 따까리만 하라는 거예요”

    “그 날도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컵을 닦는데 34개째 컵을 닦는 순간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략) 이 조직 자체가 대부분 남자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물을 먹고 컵을 그대로 놓고 간 걸 내가 여태 설거지를 했던 거죠.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는 정보통신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했던 시절이었고 PC통신을 통해 사람들이 소통하기 시작했었다고 하는데요. 이 자각을 계기로 PC통신에서 여성활동가들과 모여 이야기하다 여성활동가 모임이 만들어졌고, 이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결성되었다고 해요.

    여중여고여대를 나온 엄혜진 님은 대학에서 단과대 학생회장,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소위 ‘짱을 먹으면서도 따까리’ 일도 하였는데 졸업 후 사회에 나와 ‘낯설지 않은 낯선 경험’을 하게 되셨던거죠. 늘 주체적으로 살아왔는데 나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성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에 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은 제가 생각했던 페미니즘 운동, 페미니즘 운동과 좌파 운동간의 관계, 그것을 내가 수행하고 실행한다고 하는 것, 내 운동의 전망으로 사고한다는 게 총체적으로 아주 갈등스럽고 고민스러웠던 순간이 찾아와요”

    “내 삶과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주체로서 중심에 있음에도 내 운동을 내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내 운동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게 분명한 것 같고 특히 페미니즘이 그랬던 것 같아요. 왜 그 때 그 차이를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91학번 엄혜진 님의 생애경험은 자연스레 97학번 나영 님으로 연결되었어요.

    < “나는 페미니즘에 어떻게 물들었나?”>

     

    현재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SHARE)의 대표이신 나영 님은 “나는 페미니즘에 어떻게 물들었나?”를 제목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주셨는데요. 아주 개인적이면서 당시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담긴 다양한 사진을 통해 나영 님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너는 영페미였니? 라고 물어보면 저는 내가 영페미였다고 말하기는 애매해요. 하지만 영페미들의 운동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실질적으로 제가 페미니즘에 물드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물들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관계, 고등학교 때 활동한 학생회, 문화잡지들, 대학 신입생 시절 새터에서 인연 등으로 이후 다양한 운동의 전선에서 운동의 흐름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해요. 호주제 폐지운동이 ‘어린 나영’과 가족에게 끼쳤던 크고 작은 영향, 학생운동에서 경험한 것들, 운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노동, 계급, 교육, 여성, 환경, 장애인인권, 성정치 운동 등이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로 서서히 물들게하였다고 했어요.

    “사실 저는 페미니즘을 정식으로 막 되게 공부를 하거나 이런 것도 아니었는데 일단 여성활동가라는 이유로 그런 곳에 불려 다니게 됐어요.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여성이니까 하라는 거예요. 부딪치면서 배우게 된 거예요. 실패들을 계속 거치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그 상처를 계속 쌓고 실패를 쌓고 하면서 이제 그 대응들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쾌락의 언어라고 하지만 거기서 평등한 관계는 없었고 그게 나중에 위험의 언어로 간 이 과정에 있는데 그래서 지금은 반성폭력운동 개념만 남고 섹슈얼리티는 없고…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는 것이 관계와 평등이 없는 쾌락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피해자와 위험의 언어로써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정의의 문제와 페미니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활동들을 더 조직하면 좋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인용하여 페미니즘에 어떻게 물들었나를 설명하신 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페미니즘에 계속 물들어왔던 과정들이 있었다고 봐요. 그 시기의 나에게 어떤 신호를 계속 보내주고 그 시기의 나를 계속 돌아보고 성찰하게 해주고 계속 무언가 말을 걸게 해주는 경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어느 순간에 됐다’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 경험들을 통해서 해왔던 것들이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고 어렸을 때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중략) 많은 것이 페미니즘으로 해석되고 지금 저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차이’의 2000년대, 우리는 정말 ‘차이’를 ‘인정’했을까?>

    마지막으로 90년대 대학을 다니진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이미 페미니스트 잡지‘이프’를 통해 페미니즘에 눈을 뜬 산소학번(O₂)이라 불린 02학번 임국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임국희 님은 현재 서울대여성학협동과정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경희대 강사로 활동하고 계세요.

    “2000년으로 오면 학부 때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면 우리 그때 진짜 우울하지 않았냐?(중략) 나는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20대 초반에 혈기가 왕성할 때잖아요. 말도 걸고 싶었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고 내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고. 그런데 아무도 그거를 안 해주는 거죠. 운동이 학생사회에서 완전히 헤게모니를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거기서도 한줌 밖에 안 되는 페미니스트들의 말을 안 들어주는 거였어요. 그래서 결국은 서로를 지지하는 자조모임처럼 페미니스트 운동들이 그런 방식으로 귀결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학사회는 반성폭력 관련 학칙이 제정되고 제도화된 시기여서 공통의 의제가 사라진 상황, 그 다음에 뭘 해야 되지 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해요.

    “차이에 대한 이론들, 차이의 정치, 정체성의 차이를 긍정해야 된다, 여성들 안에서 내부의 차이에 대해 집중해야 된다, 엄청나게 강조를 하기 시작했던 시기인 거죠. 그래서 2000년대 PC(Politcal Correctness)라고 하면 결국은 수많은 정체성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게 곧 정치이자 윤리였던 거예요. (중략)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에 대해서 인정해야 한다, 이게 차이다 라고 하는 것이 되게 강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의 차이를 정말 인정했을까? 계속 그런 고민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같이 힘을 합칠 수 있다, 너무 좋은 말이죠. 그런데 이게 정말 연대로 모였을까? 저는 계속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자조의 시대라고 제가 감히 이름을 붙였는데, 같이 활동을 했던 분들은 ‘쟤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하실 수는 있겠으나 저는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2000년대는 새로운 의제를 발굴을 하기가 되게 어려웠던 거예요. 많은 게 달성이 됐죠. 그리고 나니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너와 나랑 다른 것을 인정하자,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세 분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한 경험을 듣고 참여자분들과 나눈 질문과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90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이나 조건은 달랐지만 현재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닿아있는지, 현재는 당시의 어떤 영향과 수혜를 입었는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모두 다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는 되게 힘들고 암울한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것을 발견할 것인가, 조금 힘들면 이렇게 앞에 좀 건너온 사람들한테 와서 기대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돈 내놓으라고 하기도 하고, 밥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이런 연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해요

    로리주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센터장

    이번 동창회를 통해서 시대는 다르지만 같이 싸우고 맞서는 경험들을 예전에도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든든한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길 바라요.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앞으로도 ‘여성운동의 계보를 잇는’ 시간을 만들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뜨거운 힘’을 느끼는 시간들을 더욱 열심히 만들어보려고 해요.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서울YWCA​, 크리스챤아카데미] 페미토크  (12/12)

    [서울YWCA​, 크리스챤아카데미] 페미토크 <교회와 페미니즘 공존 가능한가?> (12/12)

    교회언니들의 FEMI-TALK

    : 교회와 페미니즘, 공존 가능한가?

    <서울YWCA>와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제외하고 한국여성운동 발전사를 논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70년대 이후 두 기관 출신의인물들이 한국여성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요즘의 화두인 페미니즘 운동을 바라보는 <서울YWCA>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시선은 남다르다. 한국 여성운동의 모태와도 같은 <크리스챤아카데미>와 <서울YWCA>는 한국사회에 번지는 페미니즘 열풍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한국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묻는다면 막연하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여성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시간을 마련해야한다. 특별히 페미니즘 전선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로 나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다각화되어가며 운동의 방법이 다양해졌지만 페미니즘 운동을 “그들만의 리그”로 게토화 하는 부정적 시각도 수반한다.

     

    이러한 양극적인 상황, 페미니즘이 다각화·첨예화 되는 상황에서 <크리스챤아카데미>와 <서울YWCA>가 중재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주체가 되고자한다.

     

    진행되는 포럼을 통해 한국페미니즘 운동을 위한 구체적 의제와 실천의 제목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이에 따라 최근 <서울YWCA>가 진행한 토크쇼의 패널을 맡았던 “언니들의 페미니즘”과 함께 “기독교와 페미니즘 공존가능한?”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개요]

    일시: 2019년 12월 12일(목) 오후 7시~9시

    장소: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중구 장충단로 204)

    주관: 서울YWCA​, 크리스챤아카데미

    [순서]

    교회와 페미니스트, 왜 앙숙이었는가?_백소영 박사(강남대)

    페미니즘으로 성서읽기_이은애 박사(이화여대)

    기독교여성교육: 은밀하고 구조적인_이주아 박사(이화여대)

    교회와 페미니즘:상담사례를 중심으로_김희선박사(이화여대)

    종합토론

     

     

    크리스챤아카데미 02-395-0781/ 서울시 종로구 평창 6길 35 (03003)

    참가신청은 아래의 번호와 메일로 문의바랍니다.

    ※문의: 최고권 크리스챤아카데미 연구원(010-5525-5114)

    ​E-mail : tagung@daemuna.or.kr 

    ​여해와 함께 홈페이지 : http://www.daemuna.or.kr

  • [서울YWCA] 대중매체 성차별/성평등 사례제보 (~12/1)

    [서울YWCA] 대중매체 성차별/성평등 사례제보 (~12/1)

    ★ 대중매체 내 성차별/성평등 사례를 제보받습니다 ★

    TV를 켜면 성차별적인 장면에 답답하고 화난 적 있나요? 

    또는 고정관념을 깨는 성평등적인 장면에 놀란적 있나요?

    TV을 보며 “이건 아닌데~” 또는 “오, 저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제보해주세요!

     

    |​ ​사례 예시 |

    TV조선 <미스트롯> 19.02.28 방송 

    성상품화 논란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퇴출된 미인대회 컨셉을 그대로 사용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모두 여성이고 몸매가 부각되는 원피스 착용.

    |​ 참여 방법 |

    구글 링크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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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평등/ 성차별 사례에 대한 내용 작성

    – 작성 시 프로그램 이름, 회차, 방영 날짜를 반드시 함께 알려주세요(화면 캡쳐 환영)

    | 제보 사례 추첨 |

    – 제보해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커피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20명 추첨)

    – 해당 이벤트 포스팅을 공유해주신 분들께도 추첨을 통해 편의점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분들에게 제보 이벤트를 알려주세요!!(30명 추첨)

    – 모든 추첨자에게는 12월 6일 개별적으로 연락드립니다

    ※제보해 주신 내용은 선별을 통해 서울YWCA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에서 심의 기관에 개선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문의: 서울YWCA 여성참여팀 (02-3705-6070)

  • [비온뒤무지개재단] 뷰티풀마인드기금 추가 지원

    [비온뒤무지개재단] 뷰티풀마인드기금 추가 지원

    뷰티풀마인드기금을 추가 지원합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 성적소수자 인권 증진의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해 탄생한 뷰티풀마인드기금이 추가 배분을 진행합니다.

     

    올해 초 기금 지원을 공지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지원접수가 마감되었던 기금을 추가 확보하였습니다.

     

     마인드프리즘과의 협조를 통해 집단 프로그램 사업 예산에서 일부를 활동가들의 정신과진료/심리상담 비용으로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주변에 정신건강 돌봄이 필요한 성적소수자 활동가가 있다면 기금 신청을 안내해주세요.

     

     혐오와 차별에 맞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오롯이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청링크 : http://naver.me/5khLUnYu

  •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따라서 ‘언니Ro’_ OhmyNews 연재기사 읽기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따라서 ‘언니Ro’_ OhmyNews 연재기사 읽기

    쉽게 잊힌 ‘1970년대 N번 시다’들의 이야기

     

    전태일에서 김경숙까지,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 ‘언니Ro’ 탐방기

     

     2019년은 YH무역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가 1979년 신민당사 농성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김경숙 열사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그 정신을 기리고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역사 탐방 ‘언니Ro’를 기획했다.

    ‘언니Ro’는 1960~19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역사가 담긴 노동 현장을 권역별로 나누어 ‘구로언니Ro’, ‘청계언니Ro’, ‘영등포언니Ro’, ‘금천언니Ro’ 등 4코스로 개발되었다. 1970년 분신으로 항거한 전태일 열사, 1979년 경찰의 신민당사 강제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김경숙 열사를 깊이 추모하며, ‘청계언니Ro’ 탐방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 청계천 남쪽의 평화시장에는 10살부터 많게는 16살까지, 평균나이 13세의 어린 여공들이 주요 인력으로 일했다. 이들이 평화시장에서 하루 16~17시간씩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일당 50원이었다. ⓒ 서울여성노동자회

       
    청명한 가을하늘이 예뻤던 10월 19일,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원과 일반 참가자 20여 명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기념관(청계피복)-평화시장-전태일 재단-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따라 ‘청계언니Ro’를 걸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 교육선전부장을 지낸 이숙희 선생님을 만나 당시 노동환경, 민주노조 결성과 투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계천 남쪽의 평화시장에는 10살부터 많게는 16살까지, 평균나이 13세의 어린 여공들이 주요 인력으로 일했다. 1960~1970년대 경공업 중심의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한 정부는 이들을 산업일꾼이라 추켜세웠으나 합당한 대우는 없었다.  

    “휴식 시간을 주지 않아 작업 중 눈치 보며 화장실을 가야 했어요. 다닥다닥 붙은 다이(작업대) 밑으로 기어 나와야 해서 늘 참았다 갔죠. 켜켜이 쌓인 원단이 뿜어내는 먼지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코로, 입으로 들어가 각혈과 폐병을 유발했어요. 회사에 알렸다가는 해고될 게 뻔해 병을 숨기고 일해야 했죠. 우리는 이름도 없이 ‘1번 시다’, ‘2번 미싱사’로 불렸어요.”

      
    전시관에 마련된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작업공간 ‘다락방’을 눈으로 확인했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고 기지개는 엄두도 못 낼 그런 공간이었다. 어린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 평화시장 여공들의 다락방을 재현해놓은 곳 ⓒ 서울여성노동자회 

    이들이 평화시장에서 하루 16~17시간씩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일당 50원이었다. (당시 커피 한 잔이 50원). 회사가 제공하는 부실한 식사로 늘 배고픔에 시달리고, 잠도 부족해 졸다가 미싱바늘에 다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생리 중임에도 휴식 시간이 없어 화장실조차 제때 가지 못했고, 한쪽 구석에 깡통을 두고 화장실로 삼기도 했다.

    “당시 전태일 열사가 여성노동자의 생리휴가를 요구했어요. 상당히 앞선 것이죠. 그때는 재단사가 시다, 미싱사들의 공임을 결정하고 채용에도 영향력을 끼쳤어요. 전태일은 내가 재단사가 되면 부당한 처우를 바꿔볼 수 있겠다 싶어 월급 7천 원 받던 미싱사를 관두고, 훨씬 적은 월급을 받으며 재단 보조로 다시 시작했어요.”

    그가 이때 알게 된 것이 바로 근로기준법. 전태일은 재단사 10명과 함께 ‘바보회’를 결성해 평화시장 내 사업장 실태조사를 벌였고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를 들고 근로감독관을 찾아가고 정부, 언론에 호소했으나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1970년 11월 13일 분신으로 항거한 전태일
        

    ▲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실태 ⓒ 서울여성노동자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법으로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자신을 던지는 것이었다. 23살 노동자가 목숨을 던지고서야 언론은 노동문제를 특집 기사로 다루었다. 대학생과 시민사회, 종교계 등의 추모 집회가 이어졌고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평화시장의 청계피복노조 설립이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를 계기로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동료들은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해 투쟁을 벌인다.

    “전태일의 죽음을 두고 ‘평화시장 블랙리스트, 일하기 싫어하던 깡패가 폐병에 걸려 자살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났어요. 나도 평화시장에서 일하면서 재단사들한테 숱하게 욕설도 듣고 손찌검도 당했으니까 소문을 믿었어요. 그래서 재단사들이 만들었다는 노동조합도 가입하기 싫었는데, 거기서 야간 중학 과정을 진행한다기에 바로 가입했어요. 배우고 싶었거든. 청계피복노조 활동을 하면서 전태일 열사 분신에 대한 진실을 전해 들었죠”

    월급을 모아 작은 옷가게 사장님이 되겠다는 꿈을 꾸던 소녀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변화된 삶을 시작한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8시 퇴근을 요구해 노동시간 단축을 관철하고 퇴근 후 공부, 취미, 모임을 통해 성장을 도모했다. 미싱사가 시다의 월급을 주게 하던 관행을 없애고 ‘시다 직불제’를 도입했다. 16인 이상 사업장에만 가능하던 퇴직금을 대다수가 소규모 공장이던 평화시장에 맞게 10인 이상 사업체도 주도록 했다.

    “이 빨갱이 같은 년들아”

    청계피복 여성노조원들은 이러한 모욕과 욕설을 들으면서도 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들불처럼 일어난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은 이들 여성노동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측과 ‘짬짜미’하는 어용노조가 판을 치고,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노동조합이 하루아침에 와해되거나 어용노조가 되기도 하던 그 시절, ‘목숨 걸고’ 민주노조 투쟁을 이어간 여성노동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YH노동조합 그리고 김경숙
     

    ▲ 전태일기념관에서 청계피복노조 이숙희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 중인 참가자들 ⓒ 서울여성노동자회

      

     

    ▲ 언니Ro map ⓒ 서울여성노동자회

     
    작은 가발공장으로 시작해 수출 15위까지 오른 YH무역은 방만한 경영을 일삼다 은행에 큰 빚을 지게 되자 위장폐업을 하고 대량 해고를 단행한다. 이전부터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부당해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던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의 위장폐업에 대항해 신민당 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3일째인 1979년 8월 11일, 경찰은 신민당사에 진입해 이들을 강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21살 조합원 김경숙이 사망했다. 당시 신민당 총재가 된 김영삼은 신민당 당사를 찾아온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을 보호하며 경찰 병력과 맞섰고, 경찰 연행 과정에서 경숙이 사망하자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하는 등 강경 투쟁에 나섰다.

    김경숙 노동자의 사망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유신정권은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했다. 이에 반발한 국민들이 부산-마산 시민의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내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박정희가 부마항쟁 처리 과정에서 갈등을 빚다 총탄에 쓰러지면서 드디어 유신독재가 막을 내렸다. 자본과 독재정권의 폭압에 용감하게 맞선 여성노동자들의 단결된 행동이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온 것이다.

    언니들은 일찍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생계부양자로 일했다. 동시에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지도부를 여성으로 선출하고,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정화해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고, 자본과 국가의 탄압에 맞서 싸운 투쟁의 주체였다.

    청계천을 따라 평화시장 전태일 열사 동상 앞으로 이동해 이원아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 원장으로부터 당시 노동자들과 함께 야학한 경험을 전해 들었다.

    “노동야학이라고 하면 ‘빨갱이’라 생각할까 봐 ‘생활 야학’이라는 말로 위장(?)해 노동자들을 모집했어요. 한자어투성인 근로기준법을 한글로 풀어 교재를 만들고 노동자들과 학습했죠.”

    전투경찰이 학내 상주하던 시절, 야학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함께 투쟁한 용기.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이던 때에 일신의 안락을 뒤로하고 공장으로 들어갔던 그 뜨거운 마음. 이것이 여성노동자운동을 이어온 것이리라.

    마지막 코스인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청계언니Ro’가 마무리되었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서로 소감을 나누는 여성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동지애를 읽은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는 쉽게 지워져 왔다.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려고 한다. 언니들이 노동자로 살며 싸우고 많이 지고 끝내 이긴 이야기. 우리가 기억하고 알리자.

    언니들이 싸우고, 싸워서 우리에게 준 것에 비해 얼마나 쉬운가. 언니들의 길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은.

    고마워요. 언니!

     

    기사링크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586215

     

    ‘착한 딸’, ‘공순이’… 이건 언니들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구로 언니RO] 용감하고 강인한 ‘노동운동가’였던 구로공단의 여성노동자들

    2019년은 YH무역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가 1979년 신민당사 농성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김경숙 열사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그 정신을 기리고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역사 탐방 ‘언니Ro’를 기획했다.

    ‘언니Ro’는 1960~19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역사가 담긴 노동 현장을 권역별로 나누어 ‘구로언니Ro’, ‘청계언니Ro’, ‘영등포언니Ro’, ‘금천언니Ro’ 등 4코스로 개발되었다.  1979년 경찰의 신민당사 강제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김경숙 열사를 깊이 추모하며, ‘청계언니Ro’ 탐방기를 소개한다.

      

     언니RO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난 마리오사거리
    ⓒ 서울여성노동자회

     
    1960년대 수출 전진 기지로 조성된 구로공단. 교통 면에서 뛰어난 입지를 앞세운 구로공단은 산업화 절정기에 약 11만 명의 노동자가 종사했던 곳이다. 구로공단에서 섬유, 의복 등으로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대기업들은 당시 ‘수출만이 살 길’이라 외치며 어린 여공들의 노동력을 ‘갈아’ 쉼 없이 공장을 돌려 수출물량을 맞췄다.

    산업구조가 변화한 2000년대 들어 구로공단은 IT 위주의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했고,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공순이’, ‘공돌이’로 상징되는 구로공단의 모습을 지워갔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해야 할 ‘진짜’를 찾아 다시 이곳에 왔다.

    독재정권의 빛 좋은 개살구 ‘산업역군’도, 오빠의 학비를 대는 가련한 ‘공순이’도 아닌, ‘여성노동운동가’ 언니들을 찾아서.

    지난 9월 28일(토),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원과 일반 참가자 30명은 역사 탐방 첫 코스 ‘구로언니Ro’를 따라 걸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앞 수출의여인상 – 주)대협 – 대한광학 – 가리봉전자 – 닭장집 밀집지역 (가리봉시장 고개) – 구로동맹파업현장(서울통상 – 효성물산 – 대우어패럴) – 금천순이의집(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까지 돌아보는 것이 오늘의 코스.
       

     언니RO
     언니로맵
    ⓒ 서울여성노동자회

       수출의여인상 앞에 탐방 참가자들이 모이자 유옥순 선배님(전 콘트롤데이타 부지부장)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당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린 여성노동자들은 정부미로 지은 밥을 먹으며 일해 번 돈을 집으로 송금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죠.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는 여공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한 달에 2번 정도 쉰 기억이 나요. 명절이 되면 회사 마당에 각 지역으로 우리를 고향까지 실어줄 버스가 줄 지어 서 있어요. 명절이 끝나면 다시 태워서 돌아옵니다. 얼핏 복지서비스 같죠? 실상은 ‘구속버스’였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 만나 며칠 지내다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안 돌아올까 싶어 태워온 거예요.”
      

     언니RO
     수출의 여신상 앞 유옥순 선배님
    ⓒ 서울여성노동자회

    1960~70년대 수출에 중점을 두고 진행된 한국의 산업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단기간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인공은 산업현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인간존엄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한 노동자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 또한 그랬다.

    삼경복장 표지석 앞을 지나며 윤혜연 선배님(삼경복장,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재직)이 마이크를 잡았다.
      
    “14살이 되던 해 2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했어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해서 2살 속여 봉제공장에 입사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잔업만 100시간 넘게 했고, 철야도 일상으로 했습니다. 작업하다가 다이(작업대) 위에 대충 옷 깔고 잠을 자는 생활을 8년간 했죠. 그때 좀 잘 자고 잘 먹었으면 키가 더 컸으려나요?(웃음)”

    탐방객들 사이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언니RO
     가슴 아린 이야기를 농을 섞어가며 이어가는 윤혜연 선배님
    ⓒ 서울여성노동자회

      
    “일하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서 탁 트인 공장 주변을 둘러보는 게 그나마 속을 푸는 방법이었어요. 기업들이 조경은 또 멋지게 해놨었거든! 고된 일상에도 우리는 야간 산업체특별학급 진학을 꿈꿨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봉제공장보다 대우가 좋은 전자회사를 가기를 희망했죠.”

    봉제공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며 작업물량을 해내고,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니며 졸업장을 따 기어이 전자회사(가리봉전자)에 취업했던, 그 야무진 소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일하고 배우며 얻는 보람만큼 고민도 깊어졌다고 한다. 물에 말면 쌀벌레가 둥둥 뜨는 구내식당 밥, 출퇴근 때마다 어린 여공들의 가방과 옷을 수색하는 사측의 비인간적인 처우. 회사는 급성장을 해도 제자리인 월급. 여성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이 같은 부당행위와 인권 유린을 숱하게 겪으며 단결해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조합을 만들려 한다는 이유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행을 붙여 감시하기도 했고요, 아침 조회 때는 공개적으로 나를 가리켜 ‘빨갱이’니 어울리지 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있나요?”
        

     언니RO
     여성노동자에 가한 사측의 인권 유린을 보도한 내용
    ⓒ 서울여성노동자회

       효성물산 노동조합원들은 회사의 협박, 폭행에도 굴하지 않고 철야농성을 벌여 저임금을 해소했다. 이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주장하고 나선 것은 불온한 사상을 지닌 빨갱이어서가 아니었다. 일하며 겪은 부당한 대우와 근로조건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며 문제의식이 생겼고, 노동조합을 통해 학습하며 의식의 성장을 이룬 결과였다.

    윤혜연 선배님은 노동조합에 의해 회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지 보고 겪었다고 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밥. 정부미로 지은 밥에 익숙했던 여성노동자들은 개선된 식단이 ‘호텔밥’ 같다며 수다를 떨곤 했다고 회상했다. 또 당시 가리봉전자 노동조합 협약서에는 노동자들의 휴일까지 기재되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행동에 나서면 사측의 태도가 바뀔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투쟁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당시 전두환이 유화정책을 펼친 때였고, 이를 틈타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민주화’, ‘민주노조 결성’ 등을 활발히 해 많은 성과를 이끌어냈다. 사측이 노조간부를 구속하고, 민주노조 와해 작전을 펼쳐 여러 시도를 했지만,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은 식당을 점거해 농성·파업을 이어가며 거세게 저항했다.

    “임금협상을 주도하던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명을 해고하고, 정권이 이들을 구속까지 했습니다. 구로공단 민주노조 노동자들이 참지 않고 연대해 ‘구로동맹파업’으로 이어졌어요.”

    구로동맹파업은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정치적 동맹파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임금협상이 타결된 지 2개월이 지난 후 협상과정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의 파업을 문제 삼아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을 회사가 고소하고, 경찰이 6월 21~22일에 걸쳐 이들을 무차별 구속하자 구로 지역 노동조합은 거세게 항의하며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언니RO
     식권 하나면 잔업, 두 개는 철야
    ⓒ 서울여성노동자회

     
    1985년 6월 24일에서 29일까지 6일에 걸쳐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부흥사 5개 노조가 동맹파업을, 다른 5개 노조가 지지연대투쟁을 벌였다. 대우어패럴 노조가 깨지면 다른 노조도 깨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만들어 낸 역사적인 연대투쟁이었고,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었다.

    현재 쇼핑몰이 대거 밀집해 있는 ‘마리오 사거리’라 불리는 곳이 바로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곳에 대우어패럴, 서울통상, 효성물산이 바로 이웃해 있었다. 대우어패럴과 효성물산이 마주 보고 있던 가리봉 오거리. 구로동맹파업 당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여성노동자들은 각자 회사 건물 창문에 매달려 수건을 흔들며 연대와 지지를 표시해가며 즐겁게 투쟁했다고 한다. 유옥순, 윤혜연 선배님은 이를 노동운동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 회상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보고서는 이 구로동맹파업을 두고 ‘아름다운 6일간의 만남’이라 기록했다.
       

     언니RO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금천순이의집
    ⓒ 서울여성노동자회

     

     언니RO
     금천순이의집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탐방객들
    ⓒ 서울여성노동자회

     
    비록 경찰과 사측에 의해 폭력 진압되면서 구로동맹파업이 6일만에 일단락되었지만, 똘똘 뭉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이 땅의 노동자들과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곧 투쟁의 주체임을 보여준 것이며, 노동자들은 이 경험을 향후 노동운동의 동력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역사가 책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종종 재조명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는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는 산업화의 흐름 속에 집안을 위해 희생한 착한 딸, 혹은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공순이’로 한정해 그려졌다. 이것은 언니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공순이’라는 별칭에 녹아 있는 멸시와 가련함은 언니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조합 활동을 훼방 놓기 위한 사측의 회유도, 구사대(노동운동 진압을 위해 사측이 고용한 사람들)의 무자비한 폭력도, 인간으로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언니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민주노조운동을 견인한 언니들은 용감하고 강인한 운동가였다.

    노동운동가로서의 언니들을 제대로 알리고 기억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내년에도 언니Ro 탐방이 계속된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언니들의 진짜 이야기, 우리 언니들이 노동하며 투쟁한 이야기, 멋짐 폭발 대서사는 계속됩니다. 언니Ro에서 만나요!

    ** 구로언니Ro를 탐방해보니 구로 2,3공단은(현 금천구) 표지석조차 없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금천구청에 표지석을 보강해 세워줄 것을 요청했고, 금천구청이 이를 받아 들여 올 연말까지 구로지역 6곳에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다.

     

    기사링크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589130&CMPT_CD=MNRE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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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온뒤무지개재단]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  (12/19)

    [비온뒤무지개재단]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 <성소수자 혐오에 따른 인권 정책의 무력화> (12/19)

    전국 인권 조례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합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는 성소수자 혐오에 의해 인권도시정책이 어떻게 무력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전국 243개 지자체의 인권 조례 제정 상황을 살펴보는 실태 조사를 2019년 하반기 동안에 실시하였습니다.

     

    191219() 저녁 7시에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저동빌딩 10)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합니다. 발표회에는 본 조사의 책임연구원인 시우 (<퀴어아포칼립스> 저자) 님이 그간의 현황 조사 과정과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인권조례, 문화다양성조례, 민주시민교육조례까지 모두 제정이 철회되고 무산되는 과정을 겪은 부천의 상황을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님이 발표 해주실 예정입니다.

     

    인권조례 제정, 개정, 폐지 과정에 종교에 기반한 혐오 세력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인권조례 뿐만 아니라 성평등/양성평등 조례, 청소년 노동인권조례, 문화다양성조례, 소셜미디어조례, 민주시민교육조례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까지 수많은 조례의 제정과 개정이 모두 무산되거나 개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어떤 흐름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 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인권을 누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고민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참가신청 링크를 클릭하셔서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취재를 희망하는 언론의 경우에는 사전에 비온뒤무지개재단으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조사 및 발표회는 사단법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창국퀴어연구지원기금의 지원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 참가 신청 링크: https://forms.gle/aXeweF11QM2H3RtLA

    ※ 문의: rainbowfoundation.co.kr@gmail.com / 02-322-9374

  • [한국여성의전화] 2020 여성수첩  신청안내

    [한국여성의전화] 2020 여성수첩 <여성운동 처음의 순간을 담다> 신청안내

    <2020 여성수첩, 여성운동 처음의 순간을 담다> 

    여성수첩을 소개합니다

    1985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학 스터디 그룹 젊은 여성모임의 활동 결과물로독일 여성수첩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했습니다국가와 남성 위인 중심의 기념일로 채워져 있는 기존 달력과 달리여성운동 및 인권운동사에서 기억할만한 주요 기념일과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관련 필수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성수첩을 만드는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사회 최초의 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하고 쉼터를 개설했습니다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인권을 보장하고 지원합니다전국 25개 지부, 1만 회원과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활동하고 있습니다여성수첩의 판매 수익금은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자녀들을 위해 사용됩니다.

    * 2020 여성수첩은

    2020년 여성수첩에는 여성운동의 처음의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우리는 시작의 순간뿐만 아니라 변화의 순간까지 그려내고 기억할 것입니다.

    월별로 보는 처음의 순간들

     

    신청하기https://forms.gle/96JAekariy3h9h8H7

      위 링크를 클릭하셔서 신청서를 꼭 작성해주세요. 결제만 하고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으시면 배송 시 누락됩니다.

    여성수첩만의 특별한 점

    – 일러스트레이터 소르소르의 작품으로 여성운동의 처음 순간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 여성운동 및 인권운동사에서 기억할만한 주요 기념일 수록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일(1994.12.13), 세계여성의날(1908.3.8), 낙태죄 헌법 불합치의 날(2019.4.11.),  고 김학순씨 일본군 성노예제도 피해 첫 증언(1991.8.14) 

    – 폭력 피해 상담 등 도움 받을 수 있는 곳

    999A9B4E5DDD397A06

    여성폭력 피해 상담/여성폭력 피해자 one-stop 지원센터/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및 성매매 상담/장애인상담/성소수자상담/아동학대 신고 및 상담/학교폭력 및 청소년 상담/노인상담/이주여성 상담/사이버범죄 관련 상담/법률상담/의료비 지원 안내/가정폭력 긴급피난처 쉼터 이용하기/폭력과 차별에 침묵하지 않는 당신께 드리는 안내서 등.

    권리장전

    99592C495DDD3D4106

    표지(색상) 터키쉬 블루크림 베이지그린 베이지

    99513C435DDD3B0B18 99279D485DDD3B2315

    * 여성수첩 구성 Intro / Calendar / Montly / Weekly / Memo / Personal Info.

      – Montly 내지 총 14개월분 (2020년 12개월 전년도 1개월 후년도 1개월)

    Year Plan

    99D7674B5DDD3B8913

    Montly Plan

    9996AB4C5DDD3C5507

       * Montly 내지 총 14개월분 (2019년 12개월 전년도 1개월 후년도 1개월)

     Weekly Plan

    99168C465DDD3C8111

    Memo

    * 12개의 소르소르의 일러스트가 메모 사이사이 수록

    기타 정보

    크기 142x213mm / 페이지수 총 188

    표지 인조가죽내지 모조지

    본 사진의 내지구성에는 일러스트가 빠져있는 사진입니다.

    ……………………………………………………………………………………………………………………

    2020 여성수첩 신청 안내

    여성수첩 정가 14,000원 (회원가 12,000(본회 정기후원자) / 단체 구매 할인은 협의)

    배송료 별도(5,000), 4만원 이상 주문시 무료

    (해외배송을 원하시는 경우 거주지무게에 따라 우편료가 달라지므로 꼭 사전 문의 바랍니다.)

    문의. 02-3156-5482 / hotline@hotline.or.kr

    신청하기https://forms.gle/96JAekariy3h9h8H7

      위 링크를 클릭하셔서 신청서를 꼭 작성해주세요. 결제만 하고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으시면 배송 시 누락됩니다.

    납부방법

    – 입금계좌 하나은행 388-810010-08604 (예금주 한국여성의전화)

    – 카드결제 http://me2.do/5gsHCmGb

    ※ 여성수첩 배송은 12월 12일부터 진행됩니다.

    ※ 여성수첩 판매 수익금은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자녀들을 위해 사용됩니다.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애도하고, 말하고, 노래하는 밤  (11/29)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애도하고, 말하고, 노래하는 밤 <그녀들의 싸움을 기억한다> (11/29)

    [애도하고, 말하고, 노래하는 밤 – 그녀들의 싸움을 기억한다] 

     

    그녀들의 싸움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슬픔을, 분노를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노래하고, 함께 있음으로

    손 맞잡는 우리들의 광장을 엽니다.

    일시 _ 2019년 11월 29일(금) 19:00

    장소 _ 홍대입구 역 7번 출구 앞 광장

     

    * 함께하는 뮤지션

    차연지, 미미시스터즈, 신승은, 이지구, 정민아, 안예은, 안혜경

     

    * 따뜻한 옷, 신발, 개인방석, 핫팩이 필요해요

     

    * 현장 발언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forms.gle/4YBHxstSo2P2tu437

     

    * 개인 손피켓을 지참하셔도 좋습니다

     

    * 자율후원 _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신한은행 110-488-038542 (예금주: 김영순)